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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민속학에서 굿과 마을 공동체, 그리고 민속신앙의 지속
    한국민속학 2025. 4. 13. 23:58

    목차

    # 이름에 담긴 기억: 부군당, 부근당, 그리고 신의 이름들

    # 남근목과 풍요의 상징
    # 언덕 위의 초가 혼령을 모신 자리

    # 정월굿과 주민의 기원, 공동체가 만든 집

    한국민속학의 부군당

     

     

     

    한국 민속학 속 이름에 담긴 부군당, 부근당, 그리고 신의 이름들

     

    한국 민속학 속 이름에 담긴 기억: 부군당, 부근당, 그리고 신의 이름들 부군당은 한국 민속학 속 민속신앙 속에서 깊은 뿌리를 지닌 존재로, '부군 할아버지', '부군 할머니', 또는 '부군마저'로 불리며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여겨진다. 서울 지역의 무당들은 부군을 도당보다 상위 신격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보다 넓은 지역을 관장하는 신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부군당은 '府君堂'이라는 한자로 표기되며, 이 명칭은 관아 또는 관직을 상징하는 '부군(府君)'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교동도의 경우, '付芹堂'이라 표기된 예가 있으며, 이처럼 지역에 따라 다양한 표기와 명칭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문헌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각 관서에 모셔진 신당을 '부근당'이라 하였고, 이후 발음과 표기의 변천을 통해 '부군당'으로 변화되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는 '부군'이 '부강(富强)', '부근(附近)', '부군(付君)' 등으로도 나타나며, 이는 신의 성격이나 마을의 신앙적 정서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명칭의 다양성은 한국 민속학 속 민속신앙의 융통성과 지역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다.



     

    남근목과 풍요의 상징

    남근 목과 송씨 부인, 여성성과 풍요의 상징 부군당에는 풍요와 생명의 기원을 담은 남근 목이 봉안되어 있다. 교동도 부군당에는 세 개의 남근 목이 걸려 있으며, 이는 종교적 상징물이자, 생식능력을 상징하는 민속신앙의 실천 양식으로 해석된다. 일부 전승에서는 이 남근 목이 '송씨 처녀'를 위한 제물로 바쳐졌다고 전하며, 송씨 처녀는 억울한 죽임을 당한 여인으로서 당의 여성 신격을 보조하거나 보필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송씨 부인이 당의 주신이라기보다는, 남성임을 보좌하는 조력자 적 위치에 놓이며, 이는 남성 중심의 제의 구조 속에서 여성 신이 수행하는 민속적 역할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승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화주 당, 중구 방산동의 성 제모 등에서도 다양한 여성이신 전설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남근 목을 봉안하는 풍습은 단지 교동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강원도 삼척의 해신당, 일본의 남성이 축제, 네팔의 정초 행사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세계적 신앙 현상이다. 민간신앙에서 생식과 번영, 풍어와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이러한 상징은, 공동체의 생존과 번성을 향한 근원적 바람을 반영한다. 부군당 내부에 걸려 있는 붉은 천, 노란 저고리와 붉은 치마는 여신에게 바치는 의복으로서, 이러한 상징성과 연결되며 민속신앙의 감각적 표현으로 기능한다.



    언덕 위의 초가 혼령을 모신 자리

    언덕 위의 초가, 연산군의 혼령을 모신 자리 교동도 부군당은 읍내 북쪽의 언덕 위, 마을과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위치하고지점에 잊고 있다. 이 장소는 단순한 물리적 입지를 넘어, 신령의 시야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본래 부군당은 고읍이라는 지점에 있었으나, 읍내리로 행정 중심이 옮겨지면서 함께 이전되었으며, 이는 신당이 단순히 신성한 장소가 아닌, 공동체 중심과 밀접히 연결된 존재임을 보여준다. 부군당 옆에는 오래된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는 신목으로 여겨져 제의적 장소의 상징성을 더욱 강화한다. 부군당 내부에는 홍보를 입은 남성임과 붉은 치마를 입은 여성 신상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모란과 산봉우리 병풍이 펼쳐져 있다. 이러한 구성은 신격의 위엄과 권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주민들은 남성 신상을 연산군으로, 여성 신상을 연산군의 부인 신 씨로 인식하며, 이는 연산군이 유배되어 이 지역에서 최후를 맞이했다는 전설과 연결된다. 교동도에는 연산군이 머물렀던 고적지가 여럿 남아 있으며, 그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한 민간신앙으로 부군당이 성립되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부군당은 사적 규모도 크지 않고, 조선 후기 박지원의 기록에 따르면 사옥은 두 칸 정도로 매우 소박한 형태였으며, 서낭당보다 작은 위상을 지닌다. 이는 부군당이 제도권에서 벗어난 민속신앙의 형태임을 상징한다.


     


    정월굿과 주민의 기원, 공동체가 만든 집

    정월 굿과 주민의 기원, 공동체가 만든 신의 집 부군당의 가장 핵심적인 신앙 실천은 굿이다. 굿은 단순한 제의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여 신과 인간의 경계를 잇는 종합적 의례이다. 교동도에서는 굿이 2~3년마다 한 번씩 열리며, 무속 여성들에 의해 주관된다. 마지막 굿은 2007년에 거행되었으며, 이후 무당들의 고령화와 사망으로 인해 중단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 부군당 굿은 강력한 공동체적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굿의 준비는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기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선주들은 특별히 더 큰 비용을 부담한다. 제물과 의례 용품은 무당들이 마련하며, 이는 마을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신을 맞이하고 위로하는 문화적 장면을 형성한다. 굿은 섣달그믐에 날짜를 잡아 정월 초에 진행되며, 이는 음력 설이라는 새로운 한 해의 시작과 맞물려 상징적 의미를 더한다. 또한 관아의 업무가 시작되는 시점과도 맞닿아 있어 행정과 제의의 시간적 공명 또한 엿보인다. 부군당은 단순히 과거의 신당이 아닌, 민속과 역사, 그리고 공동체의 염원이 담긴 공간으로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그 안에는 연산군이라는 역사 인물에 대한 기억, 여신에 대한 기원, 마을 주민들의 염원, 무속신앙의 실천 등 수많은 층위의 민속적 의미가 중첩되어 있으며, 이는 한국 민속신앙의 생생한 실천 현장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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