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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속학에서 찾아본 금기어의 비밀 ' 함부로 말하지 말라'한국민속학 2025. 4. 12. 10:08
목차
# 금기어의 어원
# 죽음을 말하지 않는 문화 – 금기어로 감춰진 두려움과 예의
# 말로 지켜내는 질서 – 금기어의 민속적 기능
# 말은 곧 운명이다 – 현대 사회에 잔존하는 금기어의 한국 민속 성
우리가 매일 쓰는 말에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존재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한국민속학에서는 말 금기어에 담긴 힘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예를 갖춘 언어를 만들어왔다.
금기어는 단순한 회피의 언어가 아니라, 재앙을 막고 복을 부르는 우리 민속의 깊은 삶의 방식이다.
지금부터 그 신비한 언어문화의 세계를 따라가 보자.한국민속학 금기어 금기어의 어원
‘금기어(禁忌語)’는 한국 민속학에서 말로 금하는 일”, “삼가야 할 말”, “가리고 지켜야 할 말”을 뜻하며, ‘구기(拘忌)’ 혹은 ‘금기(禁忌)’라는 말로도 번역된다. 이 개념은 영어의 ‘타부(taboo)’와 연결되며, 원래는 폴리네시아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다 붕(dabung)’이나 ‘남부(tam bu)’라는 말이 쓰이는데, 이 중 ‘남부’가 일반적으로 더 널리 퍼졌다. 하지만 ‘타부’라는 표현이 폴리네시아 전역에서 동일하게 쓰이는 것은 아니며, 마오리족, 사모아 쪽, 타히티 쪽, 통가죽 등에서는 ‘금지되어 있다’는 개념을 ‘SA-’나 ‘ha-’라는 접두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타부의 개념은 다양한 민족 지적 배경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며, 예컨대 로메 치아의 이라 족은 이를 ‘튼다(tana)’라 하고, 벤다 족은 ‘부왕과(bwana)’, 아라비아어권에서는 ‘하람(harm)’이라 부르며, 모두 신성하거나 위험하여 말하거나 접촉해서는 안 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금기 개념은 유럽에도 전파되어 신비주의적 사고와 결합하였으며, 특히 《대영 백과사전》(9판, 1875~89)과 제임스 프레이저의 저서 《황금가지》에서 널리 소개되었다. 프레이저는 타부를 종교적 금기 체계로 간주하면서, 이것이 폴리네시아에서 가장 발전했지만 대부분 지역에서도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타부를 ‘노아(NOA)’와 대조했는데, ‘노아’는 통가에서 ‘사소한’, 타히티에서는 ‘속된’, 사모아에서는 ‘보잘것없는’, 만도리에서는 ‘제한되지 않은’ 또는 ‘삼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노아’는 자유롭고 일반적인 것(free and common), 제한이 없는 것(unlimited), **특별하지 않은 것(unspecified)**을 가리키며, 이는 곧 타부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프레이저는 타부 개념을 설명하면서, 예를 들어 “사자(死者)와 접촉한 사람은 그 손으로 음식물을 만져서는 안 된다"라는 규칙이 폴리네시아 사회 전반에서는 통용되지만, 타고 비어 같은 특정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는 타부의 보편성과 동시에 문화 간 차이와 다양성을 보여준다. 타부는 단지 금기 행위(tabooed acts: 먹기, 마시기, 성적 접촉 등) 나 금기 인물(tabooed person: 추장, 임금, 월경 중 여성 등), 금기 물건(tabooed thing: 무기, 피, 머리카락, 손톱 등), 금기어(tabooed words: 죽은 자의 이름, 신의 이름, 왕의 이름 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성함과 재앙, 운명 사이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언어적 장치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는다.
죽음을 말하지 않는 문화 – 금기어로 감춰진 두려움과 예의한국의 민속문화에서는 오랫동안 죽음이나 병, 재앙과 같은 불길한 일을 직접 말로 표현하는 것을 피하는 관습이 이어져 왔다. 대표적으로 ‘죽는다’라는 표현은 일상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대신 ‘돌아가신다’, ‘가시다’, ‘눈을 감다’, ‘숨을 거두다 ’와 같은 **완고 고어(緩曲語)**가 사용된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단지 예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말하는 것이 실제로 그것을 불러올 수 있다는 민속 신앙과 깊은 연관이 있다. 말이 곧 실현될 수 있다는 ‘언어력(言言力)’ 개념은, 불길한 말을 삼가는 이유를 민속적으로 정당화하는 힘이 된다.
이러한 금기어 문화는 죽음뿐만 아니라, **호환(虎患)**과 같은 재앙에도 적용된다. 옛사람들은 호랑이에게 해를 입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호랑이’라는 말 대신 ‘산군(山君)’, ‘그분’, ‘길하신 분’이라 부르며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우회적으로 지칭했다. 이는 단지 동물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신령스러운 존재에 대한 경외와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장례나 제사와 같은 의례의 상황에서도 금기어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제사를 지내는 도중에 웃거나, ‘웃기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금기로 여겨지며, 특히 상가에서는 ‘재수 없다’, ‘꺼림칙하다’ 같은 말을 입 밖에 내는 것조차 꺼려진다. 더불어 상주나 조문객들은 의도적으로 화사한 단어를 피하고, 슬픔과 조화를 이루는 말만을 골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관습은 민속적으로 ‘말이 분위기를 해친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며, 공동체의 감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비언어적 약속처럼 기능한다.
이처럼 금기어는 단순한 말의 선택이 아닌, 삶과 죽음, 복과 화를 가르는 경계선에서 행해지는 상징적 언어 실천이다. 사람들이 불운을 막기 위해 선택한 말의 방식은, 언어를 통해 운명을 조절하려는 민속적 삶의 지혜이자, 두려움과 공경이 함께 깃든 문화적 유산이다.
말로 지켜내는 질서 – 금기어의 민속적 기능금기어는 단순히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언어를 통해 불확실한 세계를 통제하려는 시도이자, 말에 깃든 힘을 경계하고 조절하는 민속적 장치다.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 금기어는 주로 죽음, 질병, 재앙, 신성한 존재처럼 불안하거나 신비로운 대상과 관련된 상황에서 나타나며, 그 말 자체가 현실을 자극하거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말을 회피하거나 바꾸는 행위는 단지 조심스러운 표현이 아니라, **말의 힘(언어력, 言言力)**에 대한 집단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첫째, 금기어는 심리적 보호 기능을 한다. 사람들은 ‘죽는다’, ‘피’, ‘호랑이’처럼 불길하게 여겨지는 단어 대신 ‘돌아가신다’, ‘산군(山君)’과 같은 완곡 어를 사용함으로써 두려운 상황을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받아들인다. 이는 불운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무의식적 불안에 대한 자가 방어적 언어 전략이다.
둘째, 금기어는 사회적 통합과 질서 유지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장례식장에서의 언어 절제, 상가에서 밝은 말투를 피하는 문화 등은 모두 말을 통해 공동체의 감정과 분위기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언어 규범은 무형의 사회 규칙으로서, 특정 상황에서 사람들 간의 감정적 공감과 예절의 균형을 만들어낸다. 말이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금기어는 마치 의례의 일환처럼 작동하는 언어적 금기가 된다.
셋째, 금기어는 신성한 존재에 대한 예우와 경계심의 표현이다. 신이나 왕, 조상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다른 말로 대신하는 관습은, 그 대상의 힘을 두려워하고 동시에 경외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금기어는 말을 줄이거나 돌려 말함으로써 권위를 인정하고, 동시에 재앙을 피하려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한다.
결국 금기어는 하나의 표현을 넘어서, 공동체의 세계관과 언어관, 나아가 생존 방식이 응축된 문화적 코드다. 무심코 피한 말속에는 두려움, 예절, 규율, 신앙이 얽혀 있으며, 그것은 언어가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닌, 현실과 운명을 가르는 경계선임을 보여준다. 금기어는 바로 그 경계에서 작동하는 말의 의식이자, 민속적 삶의 논리와 감각이 가장 섬세하게 드러나는 언어 행위이다.
말은 곧 운명이다 – 현대 사회에 잔존하는 금기어의 한 민속 성오늘날 우리는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금기어는 여전히 형태만 바꾸어 우리 삶 속에 존재한다. 인터넷에서는 초 성어나 이모티콘, 은어 등을 통해 불길한 말을 돌려 표현하고, 시험이나 혼례, 출산을 앞둔 사람들 역시 특정 단어의 사용을 꺼린다. 이는 말이 곧 현실을 결정짓고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결국 금기어는 언어를 통한 질서의 구현이자, 민속적 사고의 응축된 결정체이다. 과거 사람들은 말로 재앙을 피하고 복을 불렀으며, 우리는 여전히 말을 고르고 삼가며 하루를 살아간다. 금기어는 단지 말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둘러싼 인간의 감정, 신앙, 질서, 심리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문화 코드다. 따라서 금기어에 대한 고찰은 곧 말이라는 행위의 무게와 그 안에 담긴 삶의 원리를 되새기는 일이라 할 수 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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