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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 무당에서 태 주까지: 한국 민속학 신앙의 계통과 지역성
    한국민속학 2025. 4. 30. 12:54

    목차

    # 지역별 무당의 호칭과 역할의 차이 – 민속신앙의 지형도

    # 지역별 무당의 호칭과 역할의 차이 – 민속신앙의 지형도

    # 세계 속 강신무와 세습무의 공존 – 한국민속학과 비교를 통해 본 민속신앙의 확장
    # 춤추는 무당과 춤추지 않는 무당 – 기능으로 본 무당의 분화와 민속신앙의 확장성

     

    춤추는 무당에서 태 주까지: 한국 민속학 신앙의 계통과 지역성
    춤추는 무당에서 태 주까지: 한국 민속학 신앙의 계통과 지역성

     

     

    지역별 무당의 호칭과 역할의 차이 – 민속신앙의 지형도

     

    한국 민속학에서는 민속신앙의 주체 중 하나인 무당을 지역별로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를 고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민속적 접근이다. 무당의 호칭은 단순한 명칭의 차이를 넘어, 해당 지역의 신앙 구조, 무속 계승 방식, 무당의 사회적 위상 등을 반영한다. 실제로 무당은 전국 어디서나 존재하는 공통적 신앙 매개자이지만, 그 명칭은 놀라울 만큼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함경북도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무당’ 또는 ‘스승’이라 부르는데, 이 중 ‘스승’은 경칭, ‘무당’은 비칭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북청에서는 여성 무당을 ‘홑에 미(ho semi)’, 남성을 ‘홑에 비(hose bi)’라고 구분하여 부르며, 함흥 지역에서는 남성 무당을 ‘헐렁한’, 여성 무당을 일반적으로 ‘무당’이라 칭한다. 이러한 표현은 해당 지역에서 무당이 수행하는 역할과 그에 따른 사회적 인식의 차이를 엿보게 한다.

    한편 평안도와 황해도에서는 여부를 ‘무당’이나 ‘만신’, 납부를 ‘박수’ 또는 ‘박사’라고 부르며, 특히 만신과 짝이 되어 굿판에서 장구를 치는 여성 무당은 ‘술 맞이 할머니(평안도)’나 ‘장구 할머니(황해도)’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불린다. 죽은 아이의 영혼을 모셔 점을 치는 ‘태조’와 같은 존재도 이 지역에서 독특한 신앙 실천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는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답게 다양한 무속 계통이 존재하는데, 한강 이북 지역에서는 ‘신내림’을 받은 강신무를 중심으로 ‘기자(祈子)’ 또는 ‘만신’이라는 명칭이 사용되며, 남자 무당은 ‘박수무당’으로 따로 부른다. 굿판에서 함께 음악을 맡는 조력자들은 ‘기대(장구)’, ‘전한(피리, 해금)’, ‘제비(지금)’ 등으로 불리며, 굿의 형식과 진행 방식에도 그 영향을 미친다.

    한강 이남 지역은 세습무 계통이 강하게 나타나는 지역으로, 여성 무당은 ‘미지’, 남성 무당은 ‘호랑이’라고 불린다. 호랑이는 악사에만 국한되지 않고 굿거리의 일부를 직접 주관하는 능동적 존재로, 굿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사례가 많다. 이들 외에도 맹인 납부인 ‘판수’, 관우를 몸조심으로 모시는 ‘전내(殿內)’, 아이의 영혼을 모시는 ‘태조’ 등은 특히 서울에서 한 말 이후 두드러진 신앙 현상을 보여준다. 충청도와 강원도 지역은 독경 중심의 신앙이 두드러지며, ‘법사’, ‘복술’, ‘문 복쟁이’, ‘점사’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독경 무가 주도권을 가진다. 이들은 무격이라기보다는 독송과 점복을 병행하는 존재로 이해되며, 무속 전승과는 다른 독자적 신앙 영역을 차지한다.

    호남지역은 세습무 계통의 여부 ‘단골’, 납부 ‘고인’이 중심이 되며, 지역마다 대를 이어 활동하는 무가 존재한다. 여기에 신내림을 받은 점복 중심의 무당도 존재하며, 남자는 ‘법사’, 여자는 ‘보살’이라는 호칭이 사용된다. 이러한 범사나 보살은 충청도와 강원도의 독경 무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영남 지역에서는 무당이라는 말이 남녀 구분 없이 쓰이지만, 일상에서는 ‘암무당’, ‘순무다’이라는 비칭도 존재하며, 공식적으로는 여성은 ‘무녀’, 남성은 ‘호랑이’ 또는 ‘양 중’으로 불린다. 이들은 동해안을 따라 넓게 분포하며, 신내림을 받은 ‘선무당’도 존재한다. 간단한 비손을 담당하는 ‘미래 쟁의’나 ‘막음 쟁의’ 또한 지역 고유의 신앙 실천 구조를 보여준다.

    제주도는 독특하게 무당을 ‘심방’이라 부르며, 성별 구분 없이 통칭으로 사용된다. 남자는 ‘소 나이 심방’, 여자는 ‘예심 방’이라 구분되기도 하며,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여성 무당은 ‘삼승 할멈’이라는 독립된 명칭으로 존재한다. 굿판에서는 ‘소비(반주자)’, ‘제비(심부름꾼)’ 등 구체적인 역할에 따라 호칭이 나뉘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의 민속신앙에서 무당은 지역적 특성과 전승 구조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단순한 직업적 호칭이 아니라 신앙 구조와 사회적 관계, 무속 수행 양식 등 복합적인 요소를 반영하는 민속학적 상징으로 작용한다. 한국 민속학은 이러한 호칭의 차이를 통해 지역 사회의 신앙 체계와 민간 종교의 실천 양상을 이해하는 데 깊이를 더한다.


     

    신의 선택과 가계의 계승 – 강신무와 세습무의 이원 구조

     

    한국 민속학에서 무당은 단일한 존재가 아닌, 그 성립 방식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바로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이다. 이 분류는 무당이 무업(巫業)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기준으로 하며, 각각은 신앙체계 내에서 매우 다른 상징성과 역할을 지닌다. 강신무는 말 그대로 신이 몸에 내린 사람, 즉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 이들을 가리킨다. 반면 세습무는 부모나 시가로부터 무속을 전수하여 대물림으로 무속을 이어가는 이들을 지칭한다. 이 두 분류는 단순히 전승 방식의 차이를 넘어서, 민속신앙 속 신과 인간의 관계, 의례의 방식, 지역별 신앙 구조 등 여러 방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강신무는 일반적으로 신병(神病)이라는 일종의 영적 체험을 통해 신령과의 접속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 체험은 대부분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동반하며, 무속적 자각과 동시에 신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끈다. 이후 기존의 무당인 ‘신어머니’나 ‘신아버지’에게 내림굿을 받고, 의례의 기초와 굿거리, 신의 봉사 방식 등을 전수하며 무속을 수행할 자격을 갖추게 된다. 이 과정은 사사(師事) 관계이자 의례적 통과의례로, 혈연과 무관하게 영적 자질과 체험을 중심으로 무당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민속학에서는 이러한 강신무의 구조를 신앙 체계 속 ‘선택된 자’로서의 종교적 정당성과 연결 지으며, 무당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분석한다.

    반면 세습무는 그 존재 기반이 혈연과 가계 전승에 있다. 무당 집안에서 태어난 자녀가 자연스럽게 무당으로 성장하거나, 여성이 결혼을 통해 무당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 시어머니로부터 무속을 계승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경우 ‘아버지-아들’ 또는 ‘시어머니-며느리’라는 가족 내 계보 속에서 무속 기능이 전수되며, 이를 통해 일정한 지역사회 내에서 무계(巫系)를 형성한다. 세습무는 일반적으로 내림굿 없이 기능을 전수하며, 신체적 고통을 동반한 강신 체험보다는 오랜 기간에 걸친 실무 학습과 지역적 지지를 통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세습무는 특정 지역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신앙 권력을 바탕으로 당골판(굿의 중심이 되는 판)을 유지하고, 신과 인간 사이의 매개자로서보다 지역사회 의례의 전문가로 기능한다.

    지역적으로 보면 강신무는 서울, 경기, 강원, 함경, 평안 등 중·북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세습무는 전라도, 경상도, 제주 등 남부 지역에 분포한다. 이러한 분포는 단지 지리적 경향성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각 지역의 민속신앙이 어떤 방식으로 신령과 인간을 연결해 왔는지에 대한 체계적 차이를 보여준다. 강신무가 신의 선택과 내림에 의해 개인이 무속에 진입하고, 제의는 그 신의 영역을 기반으로 일관된 방식으로 구성되는 데 비해, 세습무는 가계 전통을 바탕으로 지역 내 축적된 의례 지식을 전달하며, 제의 또한 이원적이고 실용적인 양식으로 집행된다. 예를 들어 강신무는 신단을 설치하여 신을 봉안하고, 신의 지시에 따라 굿을 구성하는 데 반해, 세습무는 신단 없이도 기능 중심의 의례 진행이 가능하다.

    또한 강신무의 굿은 일반적으로 예언과 치병, 영적 중재 등 신령의 직접적 개입이 강조되며, 무당 개인의 신통력이 제의 성공의 핵심 요소가 된다. 반면 세습무의 굿은 주술적 상징이나 기능적 의미보다 관행적이고 반복적인 요소가 많으며, 굿거리의 구성도 지역 사회의 요구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된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 민속학에서 민간 종교의 체계적 구분을 이해하고, 지역별 신앙 문화의 형성과 발전을 추적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무당의 성립 구조는 단순한 구분이 아니라, 각 지역의 신앙 세계관과 민속 의례의 방향성까지 드러내는 중요한 민속학적 단서이다.

     


    세계 속 강신무와 세습무의 공존 – 한국민속학과 비교를 통해 본 민속신앙의 확장

     

    한국 민속학에서는 무당을 강신무와 세습무로 구분하며, 이들의 전승 방식은 민속신앙의 구조와 계보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구분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도 유사한 구조로 나타나는 보편적 문화 양상임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한 지역 안에서 강신무와 세습무가 병존하는 현상은 한국의 남부지방만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 미얀마, 대만 등지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공존 구조는 무당이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일 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 내 의례의 조직자이자 신성 질서의 수호자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세습무인 **노로(Nor)**와 강신무 계열의 **유다(Yuta)**가 함께 활동하며, 이 둘은 명확하게 기능과 사회적 지위가 분리되어 있다. 노로는 반드시 특정 집안에서 태어난 여성만이 될 수 있으며, 마을 단위의 제사를 주관하는 고유 권한을 부여받는다. 역사적으로는 왕이 지정한 혈통을 가진 집안 출신만이 노로 가 될 수 있었고, 이들에게는 상당한 재산이 함께 세습되었기 때문에, 제사장으로서의 권위와 경제력이 함께 유지되었다. 이는 한국의 전라도 지역에서 단골이 당골판을 중심으로 지역의 신앙 권력을 행사해 온 세습무 구조와 유사하지만, 오히려 오키나와 노로의 사회적 지위는 훨씬 공적이고 안정적이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반면 오키나와의 유다는 무병이나 신들림과 같은 강신 체험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며, 이후 신의 선택을 받은 자로서 ‘내림굿’에 유사한 의례를 받고 무속을 수행하게 된다. 주로 점복과 신탁 중심의 활동을 하며, 자기 집에 신단(가미라나)을 설치해 신을 봉안하고, 의뢰인의 문제에 대한 신의 뜻을 해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강신 상태에서는 몸을 떨거나, 하품, 눈물, 비명 등의 신체 반응을 보이며 신이 강림했음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모습은 한국의 강신무와 거의 동일하다. 특히 중북부 지역의 선무당들과 비교했을 때, 신의 강림 방식이나 신탁 구조가 거의 일치한다.

    미얀마 또한 매우 흥미로운 구조를 지닌다. 이곳에서 무당은 **마트 깐도(Nat KADA)**라고 불리며, 이들 역시 강신무와 세습무 계열이 공존한다. 미얀마 무당의 핵심 조건 중 하나는 반드시 강신 체험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들림이나 영적 계시를 통해 무당으로 입문하는 구조는 한국 강신무와 유사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특정 마을의 신과 신당을 관리하고 그 지역 축제를 주관하는 무당의 경우, 그 직무는 가계 내에서 세습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즉, 강신 체험을 전제로 하지만, 신당과 제의의 ‘운영 권한’은 세습을 통해 이어지는 복합 구조이다.

    특히 따웅뽀(Taungbyone) 지역에서 열리는 미얀마 최대의 민속 축제에서는 ‘난데인(Nan Ayin)’과 ‘났어(Nat Auk)’이라는 두 명의 무당이 축제를 주관한다. 이들은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무당으로, 세습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며, 마치 오키나와의 도로처럼 마을의 중심적 제의를 맡는 제사장 적 성격을 띤다. 동시에 이들도 기본적으로는 강신 체험을 필수로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강신무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 이처럼 신체적·영적 체험을 전제로 하되,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신당을 운영하고 축제를 총괄하는 직무는 혈연적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이중 구조는, 한국에서 강신무와 세습무가 한 지역 내에서 병존하며 각자의 기능을 분담하는 구조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러한 사례는 단순한 비교문화적 흥미를 넘어서, 민속신앙이 결코 하나의 유형으로만 설명되지 않으며, 사회적 구조, 공동체의 조직, 정치적 권위체계, 경제적 자원과도 밀접하게 연결된 복합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한국 민속학은 이처럼 비교 대상이 되는 타 민속신앙 사례들을 통해, 무당이라는 존재를 단순한 샤먼으로 축소하지 않고, 공동체의 제의 시스템, 상징 체계, 사회적 위계 속에서 입체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오키나와의 노로나 미얀마의 낫 깐처럼, 무당은 단순히 신을 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내 권위와 질서, 제의와 상징, 경제와 정치까지 연결되는 중추적 존재였다.

     


    춤추는 무당과 춤추지 않는 무당 – 기능으로 본 무당의 분화와 민속신앙의 확장성

     

    한국 민속학에서는 무당을 강신무와 세습무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주로 임무 과정, 즉 무당이 되는 경로에 초점을 둔 분류로서, 실제 무당의 행위 양상이나 무속의 실천 방식, 의례 기능의 다양성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무당의 존재를 보다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임무 계통 외의 기능적·행위적 기준에 따른 분류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일본 민속학자 아끼다 다카시는 무당을 ‘춤추는 무당’과 ‘춤추지 않는 무당’으로 구분하는 분석 틀을 제안했다. 이구분은 무당이 어떤 방식으로 제의를 수행하는지, 다시 말해 무당이 제의 공간에서 몸을 통해 움직이며 신을 구현하느냐, 또는 앉은 자세로 점복과 독경을 중심으로 수행하느냐에 따라 나누는 것이다.

    ‘춤추는 무당’은 대체로 우리가 전통적인 굿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례 행위 중심의 무당이다. 이들은 제의의 주재자로서 몸짓과 춤, 노래, 음악적 요소를 동원해 신과의 교감을 드러내며, 굿판을 통해 공동체의 길흉화복을 조율한다. 대표적으로 서울과 경기, 황해도 지역의 여성 무당인 만신, 남성 무당인 박수, 동해안의 해신제 무녀, 전라도의 단골, 제주도의 심방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각 지역의 제의적 전통을 배경으로, 특정한 굿거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의례 중에는 화려한 복색과 상징 도구를 활용해 신과의 연결을 가시화한다. 굿은 이들에게 있어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신의 뜻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공연스러운 종합예술이자 사회적 의례의 장이 된다.

    반면 ‘춤추지 않는 무당’은 굿의 외형적 요소보다는 앉은 자세로 정적인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무당을 지칭한다. 이들은 대부분 독경과 점복, 신통을 통한 병 치료나 고사 등을 중심으로 의례를 수행하며, 신과의 교감을 조용하고 내면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 해당하는 이들로는 선무당, 명도, 전래, 태조, 판수, 복술(卜術) 등이 있다. 지역별로는 충청도나 강원도, 평안도, 영남 일부 지역에서 이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특히 판수는 맹인 무당으로, 북을 치거나 기도문을 외며 독경을 통해 신령과의 접속을 시도한다. 이들은 굿판에서 돋보이는 만신이나 박수와는 달리 조용히 신탁을 해석하거나, 개인 중심의 소규모 의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전래는 관우를 모시는 무당으로, 서울 일대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며, 그 신성성과 정숙함이 강조되던 무속계의 독특한 유형이다.

    이처럼 ‘춤추는 무당’과 ‘춤추지 않는 무당’이라는 분류는 무당이라는 존재를 기능과 실천의 차원에서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강신무·세습무 구분과는 상보적인 설명 틀로 작용한다. 강신무 중에도 춤추지 않는 무당이 있을 수 있고, 세습무 중에도 굿보다는 점복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곧 무당이라는 존재가 단일한 형식으로 규정될 수 없으며, 민속신앙 내부의 기능적 분화와 지역적 응용, 그리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신앙 수요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현대에 와서도 점복 중심의 보살, 법사 등의 역할은 여전히 활발히 유지되고 있으며, 굿 중심의 만신은 매체와 접목되어 대중성과 시각성을 강화한 새로운 무속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한국 민속학에서는 이러한 무당의 다층적 기능을 의례적 역할, 행위 구조, 신앙 실천 방식 등을 기준으로 분석하며, 민속신앙이 단지 전통의 잔재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화적 장치이자 실천 체계임을 강조한다. 춤을 추든 않든, 신을 직접 체현하든 점복을 통해 해석하든, 무당은 여전히 공동체의 불안과 희망, 고통과 바람을 끌어안고 신과 인간 사이를 오가는 민속적 중재자로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무당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은 한국 민속학이 과거를 넘어서 현재의 삶과 신앙, 문화의 흐름까지 폭넓게 포괄하려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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