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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학 속 민속사회의 어업과 어로신앙한국민속학 2025. 3. 26. 21:46
목차
# 어업의 기원과 역사적 전개
# 조선 이후 어업 변화와 현대적 발전
# 민속 어구의 유형과 기술 발달
# 어업신앙과 민속제의 문화
한국민속학 속 민속사회의 어업과 어로신앙 어업의 기원과 역사적 전개
한국 민속학에서 어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서, 인간과 바다, 자연환경 사이에 형성된 지속 가능하고 공동체적인 생활문화로 이해된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 선사시대 이래 해양 자원을 이용한 어로 활동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초기에는 생존을 위한 필수 수단으로서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조개를 채취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기술과 경험의 축적을 통해 점차 체계적인 어업 형태로 발전하였다. 신석기 시대의 패총(조개더미) 유적과 낚싯바늘, 작살, 그물추 등의 유물은 어로 활동이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이며, 당시 사람들은 해안가와 강 하구, 석호 등 다양한 지형을 따라 어족 자원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농경이 확대되었지만, 어업은 여전히 중요한 보완 생업으로 기능하였고, 철기시대에는 철제 어구의 보급과 향해줄 발전으로 인해 연안어업이 보다 조직화하였다. 특히 삼국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어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일정한 제도적 기반 위에서 수산 자원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바닷가 인접 지역에서 조개류와 어패류를 적극 채집했으며, 해상 교역과 관련된 항만 활동도 어업과 맞물려 전개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어업이 지역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재정에도 일정 부분 기여하였으며, 『고려사 』와 『고려도경』 등의 문헌에는 어획물의 종류와 어민의 생활상, 유통 구조가 간접적으로나마 반영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더욱 본격적으로 어업을 제도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마련되었는데, 서해안과 남해안을 중심으로 어장 관리와 어세(漁稅) 제도가 실시되었으며, 어민들의 조업을 통제하거나 특정 시기·장소에서의 어획을 허가제로 운영하기도 했다. 특히 『자산어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집필한 수산생물 백과사전으로, 조선시대 어업의 실태와 기술, 도구, 지역별 어종의 분포 등 민속학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지역별로는 동해안에서는 오징어, 명태, 대구와 같은 한류성 어종이 중심이 되었으며, 남해안은 멸치, 갈치, 장어 등 비교적 따뜻한 수온의 어종이 풍부해 멸치잡이 어선단이나 염장 가공 기술이 발달하였다. 서해안은 갯벌과 간석지가 발달해 바지락, 낙지, 굴 등의 패류 중심 어업이 이루어졌으며, 밀물과 썰물의 조수 간만 차를 이용한 독특한 어로 방식도 존재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단지 어획물의 종류에 국한되지 않고, 각 지역 어촌 공동체의 문화, 신앙, 노동 방식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예를 들어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 어선을 지키는 뱃고사, 바다의 신에게 올리는 해신제 등은 어업이 단순히 노동이 아닌 신성과 연결된 민속적 행위로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어민들은 바다를 자연 자원이자 생존의 공간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존재와 연결된 성역으로 인식하였고,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바다의 신령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어업은 단순히 어민 개인의 활동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협동과 유대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물고기 분배, 조업 시기, 어구 사용 규칙 등 다양한 민속 규범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러한 전통 어업 문화는 오늘날의 상업적 어업과는 다른 차원의 생태적 감수성과 공동체 중심의 노동 문화를 보여준다. 현대에 이르러 어업 방식은 기술화되고 산업적으로 변화하였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옛 방식의 어업이 유지되거나 전통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 해양 문화와 민속적 가치의 지속성을 증명하는 살아 있는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업은 단순한 노동이나 산업이 아니라, 사람과 바다, 자연과 공동체가 맺어온 역사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며, 한국 민속학적 관점에서는 인간의 삶과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이후 어업 변화와 현대적 발전조선 후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어업은 기술,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큰 변화를 겪으며 민속사회와 어촌 공동체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조선 후기에는 해양 어업의 기술적 전환이 시작되며 어종의 다양성과 어획량이 많이 증가하였다. 명태, 조기, 청어, 멸치 등 다양한 어종이 대량 어획되기 위해 시작했고, 면사(綿絲)로 제작된 가벼운 어망이 도입되면서 어획 효율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는 바다의 변화만 아니라 어민들의 작업 방식, 노동 시간, 공동체 내 역할 분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의 어업 활동은 김홍도의 풍속화나 정약전의 『자산어보』와 같은 실학 계열의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료는 당시 어업 방식, 어민의 삶, 어구의 구조 등 실물 민속의 생생한 단면을 담고 있어 한국 민속학에서 귀중한 자료로 간주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전통 어업 문화는 큰 위기를 맞는다. 일본식 어업 기술과 어선, 어구가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전통적인 어법과 어구는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어민 공동체의 운영 방식과 문화 양식에도 상당한 변형이 가해졌다. 특히 일본식 용어와 어업 노동요, 작업 방식 등은 지금까지 일부 어촌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전통 민속문화와 외래 영향이 교차한 민속학적 지점으로 주목된다. 일제는 해태 양식(海苔養殖)과 같은 인공 양식 기술을 울산과 위도 사이의 남해안 및 서해안 지역에서 시도하였으며, 일본식 선단 시스템과 대형 어망, 철선 어선 등이 도입되면서 생산량은 일시적으로 증가했지만, 이는 한국 고유 어업문화의 기술 단절과 전통 해양 지식의 침식을 동반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의 전통 어업이 자연의 흐름과 조화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과 달리, 이 시기 어업은 점차 숱할 적 구조로 변모하며 민속적 생태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했다. 광복 이후에는 어업의 자주적 복원이 시도되었으나,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어업 또한 기계화와 대규모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현대 어업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급속히 변화하였다. 어군탐지기, 자동 조획기, 인공위성 정보 등을 활용한 고도화된 어업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원양어업 및 양식업 중심의 산업 구조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구조 변화는 어민의 생활 패턴, 어촌의 노동 구조, 그리고 바다와 맺는 관계 자체를 변화시켰다. 과거 국가에서 직접 어장을 관리하던 조선시대와 달리, 현대에는 어업이 면허 및 허가제를 기반으로 한 사유화 구조로 전환되었으며, 이는 어족 자원의 독점과 지역 불균형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더불어 기후변화, 바다 수온의 상승, 해양 생태계의 교란, 그리고 해양 쓰레기 및 중금속 오염 문제는 어획량 감소라는 현실적 위기를 가져오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어업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어촌 사회의 존속과 전통 민속문화의 생존 문제와도 직결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최근에는 지속 가능한 어업, 친환경 양식 기술, 생태 보존형 어법 등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일부 어촌에서는 전통 어구와 방식의 복원을 통한 문화유산 보존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오늘날 어업은 더 이상 단순한 노동 활동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전통과 기술, 생계와 생태의 균형을 새롭게 조율하는 복합적 문화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민속학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며, 단절된 전통을 복원하고 현대 어업 속에 있는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어업의 미래 또한 문화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 생태적 상상력과 공동체적 재구성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민속학 속 민속사회의 어업과 어로신앙
민속 어구의 유형과 기술 발달한국 민속학의 시선에서 전통 사회의 어업 활동은 단지 고기를 잡는 노동 행위를 넘어,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과 지혜가 담긴 민속적 지식체계로 간주한다. 그중에서도 어로에 사용된 **어구(漁具)**는 시대별 기술 발달과 지역적 생태 환경, 공동체의 생활양식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중요한 민속자료로 평가된다.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작살·낚시·그물과 같은 기본 어구들이 점차 발달하였으며, 특히 낚싯바늘은 뼈나 돌로 만든 원시적 형태에서 점차 철제나 청동제 도구로 진화하면서 어로의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재료의 전환이 아니라, 기술과 생태 인식의 정교화, 즉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읽고 대응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민속학적 근거이기도 하다. 어구는 사용되는 수역의 환경에 따라 크게 내수면용과 해면용으로 구분되었는데, 내수면 어구로는 강, 하천, 호수 등에서 사용되는 투망, 통발, 어항 등이 있고, 해면 어구로는 체취로(손이나 호미 등을 이용해 조개류를 채집), 막 이류(돌이나 나뭇가지를 이용해 물고기를 가두는 담당 형 구조), 낚시로(대낚, 주낙), 그물류(걸그물, 가마 그물, 후릿그물 등)가 대표적이다. 특히 후릿그물처럼 공동체가 협동하여 물고기를 몰고 가두는 방식은 단순한 어로 기술을 넘어 집단 노동과 협업 문화가 반영된 중요한 민속적 행위로 이해된다. 조선시대에는 상업적 대규모 어업보다는 가족 단위의 생활 어획이 주를 이루었고, 어구 제작은 지역 자원에 의존하여 칡 껍질, 짚, 왕골 등 자연 재료를 활용한 간단하면서도 기능적인 구조를 갖추었다. 내구성은 낮았지만, 지역 생태와 생업의 조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지역에 따라서는 방염이나 죽방렴과 같이 구조물 기반의 고정식 어구가 발달했는데, 이들은 해안선의 형태, 조류의 흐름, 바닥 지형 등을 고려한 고도의 생태 지식이 집약된 어업 방식이었다. 어구는 단순히 잡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바다가 맺은 관계의 형상화이며, 환경을 이해하고 길들이며 살아온 민중의 지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어구 제작은 지역과 제작자에 따라 세부 구조와 명칭, 기술 수준이 다르게 나타났으며, 이는 해당 지역의 해안 지형, 어종의 종류, 계절적 특성 등 복합적 요인이 반영된 지역 민속 기술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러한 민속 어구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일본식 어선과 대형 어구, 집어등, 선단 중심 어법 등이 유입되면서 전통 어구는 점차 소외되고, 많은 어촌에서는 일본식 기술과 용어, 작업 방식이 고착되었다. 이에 따라 단순한 어법의 변화만이 아니라, 민속적 어업 전통의 단절, 지역 고유 기술의 소멸, 외래문화의 깊은 침투라는 민속학적 과제를 남기게 된다. 현재까지도 일부 어촌에서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어구 명칭이나 작업 노래 등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으며, 이는 전통과 외래가 공존하고 충돌한 문화의 흔적이자 비교 민속학적으로도 중요한 분석 대상으로 여겨진다. 오늘날에는 전통 어구의 일부가 민속박물관, 해양문화재연구소, 지방 해양민속관 등에 전시·보관되고 있으며, 그 복원과 연구,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 유물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함께 살아온 민중의 생활문화를 복원하고 후세에 전승하려는 민속학적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어구는 그 자체로 생업과 기술, 공동체와 환경, 전통과 정체성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적 문화기후로서, 한국 민속학이 자연과 사람 사이의 오랜 상호작용을 읽어내는 핵심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어업신앙과 민속제의 문화
한국 민속학에서 어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자연과 인간, 신성과 공동체가 긴밀히 엮인 복합적 문화 체계로 이해된다. 특히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어민들은 고된 노동과 예측할 수 없는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특유의 민속신앙과 제의 문화를 형성해 왔으며, 이는 단지 주술이나 기복을 넘어 공동체 정체성과 자연관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농촌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풍년제가 존재하듯, 어촌에서는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제의가 널리 전승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풍어제, 뱃고사, 도깨비고서(참봉 고사) 등이 있으며, 이는 바다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공간 속에서 생존과 안전을 기원했던 어촌 공동체의 집단적 신앙 실천을 보여준다. 풍어제는 마을 단위로 무당을 초빙하여 바다신이나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를 지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명칭과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동해안의 별신굿, 서해안의 배연신굿, 전북 위도의 띠뱃놀이 등은 바다와 배, 어획의 풍요를 상징하는 민속 의례로, 신을 모시는 의례와 놀이가 결합한 복합형 제의로 이해된다. 반면 뱃고사는 보다 개인적이고 실천적인 형태로, 선주나 선원이 배 서낭신에게 올리는 제사다. 이는 항해의 안전과 좋은 어획을 기원하며, 보통 정월 대보름이나 음력 설날, 첫 출어를 앞둔 날 등에 진행되며, 어선 갑판 위에서 제상을 차려 조용히 진행되기도 한다. 도깨비고서, 또는 지역에 따라 참봉 고사라 불리는 의례는 주로 서해안과 전남 갯벌 지역에서 전해지는 독특한 신앙 형태로, 조업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불길한 기운이나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 갯벌에 제물을 차려 바다신의 노여움을 달래는 의례다. 특히 이 의례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밀묵은 정화와 순환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바다의 평안을 기원하는 주술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메밀의 질감과 차가운 속성이 사악한 기운을 차단한다고 믿었던 전통과 맞물리며, 바다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신성한 음식으로 간주하였다. 이 외에도 어민들은 과거 어획이 풍부했던 해역이나 고기떼가 자주 몰리던 장소에 작은 사당을 세워 특정 신을 모시는 신앙 형태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지역마다 다양한 신명과 명칭으로 분화되어 전승되었다. 이러한 어업 관련 제의에는 다양한 의복과 소도구, 음악과 무용, 제물과 제상 구성이 동반되며, 제사 이후에는 마을 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공동 식사와 나눔을 통해 공동체 결속을 강화하는 장으로 이어졌다. 어로 신앙은 단지 물고기를 많이 잡기 위한 주술의 차원을 넘어서, 자연을 경외하고 생명을 존중하며 조화를 추구하는 정신문화로 기능하였으며, 사람과 바다 사이에 형성된 윤리적 관계와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이들 의례 중 일부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체계적인 보호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민속예술로서의 가치도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 의례가 단순한 전승을 넘어 지역의 문화 자산이자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며, 해양 문화의 정체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어업 신앙과 민속제에는 전통 어업 문화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며, 삶과 노동, 신앙과 놀이, 공동체와 자연의 조화를 보여주는 한국 민속학의 핵심 사례라 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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