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한국 민속학으로 풀어보는 '요괴는 어디에나 있다(2)
    카테고리 없음 2025. 4. 21. 10:37

    목차

    # 민속의 어둠을 걷는 존재, 요괴를 다시 보다

    # 초목을 태우는 불운의 짐승, 독을 ‘강철이’

    # 전쟁의 운명을 바꾼 신마, 고구려의 거로

    # 수행으로 사람 된 존재들, 농정과 우정

    # 정성을 전한 물속의 이인, 물고기 귀신 전설

    # 신화 너머에 남겨진 것들 –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인’의 이야기

     

     

    한국 민속학으로 풀어보는 '요괴는 어디에나 있다(2)
    한국 민속학으로 풀어보는 '요괴는 어디에나 있다(2)

    민속의 어둠을 걷는 존재, 요괴를 다시 보다

    한국 민속 속 요괴는 단순한 상상 속 괴물이 아닙니다.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했으며, 어떤 요괴는 인간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이야기(1부)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깨비부터 전해 내려오는 대표적인 요괴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정체와 상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2부에서는 조금 더 깊고 낯선 세계로 걸어가 보려 합니다. 사람과 요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들, 지역에 따라 전승된 기묘한 존재들, 그리고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이야기 속 요괴들의 숨겨진 의미를 하나씩 들여다보며, 요괴라는 존재가 우리 조상들의 삶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 요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였을지도 모르니까요.

     

     


     

    초목을 태우는 불운의 짐승, 독을 ‘강철이’

    한국 민속에서 전해 내려오는 ‘강철이’는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동물이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실로 위협적이다. 강철이는 ‘독룡(毒龍)’이라 불릴 만큼 사납고도 무서운 기운을 품고 있는 요괴로, 가뭄이나 우박 같은 자연재해와 관련된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 요괴는 맹렬한 열기를 머금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한 번 지나가기만 해도 산천초목이 바짝 말라버린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곡식조차 타들어 가듯 시들어버리니, 그 지역은 가을이라 해도 봄처럼 망가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전해지는 속담에는 "강철이 간 데는 가을도 봄이다"라는 말이 있으며, 이는 운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나, 가는 곳마다 일이 안 풀리는 이들을 비유할 때 쓰이곤 했다. 문헌 『지봉유설』에서도 이 강철이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데, 시골 노인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강철이는 몇 리 안의 풀과 나무, 곡식까지 모두 말라 죽게 만드는 무서운 짐승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강철이는 단순히 초목을 말리는 괴물이 아니라, 민속 속에서 자연재해의 공포와 인간의 무력감을 형상화한 존재로 이해할 수 있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던 시절,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기상이변과 농작물 피해를 이런 강력한 요괴의 출현으로 풀어냈다. 이처럼 강철이는 재앙과 불운의 상징이자, 인간이 자연을 대하며 품었던 두려움과 존중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요괴다.


    전쟁의 운명을 바꾼 신마, 고구려의 거로

    ‘요괴’하면 흔히 두려운 존재를 떠올리지만, 한국의 전통 속에는 사람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주는 신령한 존재, 이른바 '영물(靈物)'로 여겨진 신수(神獸)들도 함께 존재한다. 고구려의 전설 속 명마 ‘거로’는 바로 그런 존재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 대무신왕은 즉위 2년째 되는 해 음력 9월, 골 구천에서 사냥하던 중이 특별한 말을 얻게 된다. 그루는 ‘신마’로도 불리며, 학자들 사이에서는 한혈마(汗血馬), 즉 피처럼 붉은 땀을 흘리는 전설의 군마로 해석되기도 한다. 대무신왕은 이 말을 얻은 직후 동부여를 정벌하고자 출정하였고, 실제로 같은 해 10월, 동부여를 침공하는ㄱ 대규모 전투에 나섰다. 그러나 전투 도중 포위되며 그루와 고구려의 국보급 전리품인 비류 원의 솥을 잃게 되는데, 놀랍게도 2년 뒤, 그루는 동부여의 말 100여 필을 이끌고 스스로 돌아와 차회 곡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명마 전설을 넘어, 그루가 말들 사이의 지도자이며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영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민속적 가치가 높다. 고구려의 명마들이 서식하던 만주 지역을 석권하며, 나라의 승리를 이끄는 존재로 등장한 그루는 고대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전설의 신수’로 자리 잡았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시대, 전설 속 동물들은 단순한 탈것이나 사냥 대상이 아니라, 신의 뜻을 전달하거나 역사적 운명을 바꾸는 초월적 존재로 받아들여졌고, 그루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수행으로 사람 된 존재들, 농정과 우정

    한국 민속 이야기에는 오랜 세월 수행을 거쳐 인간의 모습이로 변화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녹정(鹿精)’과 ‘웅정(熊精)’은 단순한 요괴를 넘어 **수백 년을 살아온 신비한 생명체이자, 도를 닦아 사람의 형상을 얻은 이인(異人)**으로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신라 말기의 학자 최고운과 관련된 전승에서 등장한다. 그는 가야산에 은거해 공부하던 시절, 매일 사슴 한 마리가 그의 책상 밑에 엎드려 있었는데, 마치 경전을 듣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에 최고운은 "네가 짐승일지라도 도를 흠모하니 사람의 길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고, 결국 그 사슴은 사람의 형상을 얻게 되었다. 이후, 이 존재는 '녹정'이라 불리며, 스스로 500세라 밝혔고, 함께 등장한 ‘웅정’이라는 존재는 곰에서 변화해 인간이 되었으며, 400세라고 하였다. 이들은 일반적인 사람의 얼굴과는 다르게 길거나 흐릿한 얼굴, 하얀 혹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독특한 외모로 묘사되며, ‘청경 누수’, ‘백운 거사’, ‘청 오너라’ 같은 별호를 사용했지만, 끝내 본래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단순히 인간의 모습만을 갖춘 것이 아니라, 시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예언 능력까지 지녔다는 것이다. 녹정은 동국의 미래 정세를 언급하며, 나라가 셋으로 갈라져 100여년간 싸운 후 통합될 것이고, 통일을 이룰 자는 정(鄭)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예언하였다. 또한 그 혼란의 시작과 반정의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유(柳), 이(李), 구(具)씨 성을 가진 이들이 정세를 바로잡을 것이라 하였다. 이는 단지 신비한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혼란기 속에서 백성들이 기대고자 했던 희망의 상징이자 민속적 예언자로서의 이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녹정과 웅정의 이야기는, 인간이 아닌 존재도 덕성과 수행으로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존재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이 전하는 말이 시대의 진실과 미래의 질서를 밝히는 지혜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는 곧, 한국 민속 속 이인이 단지 괴이한 존재가 아니라 도와 진리를 담은 성스러운 중재자로 여겨졌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정성을 전한 물속의 이인, 물고기 귀신 전설

     

    우리 민속에서는 물고기와 같은 작은 동물에게도 영적인 힘이 깃들 수 있다고 믿었다. 단순히 귀신이나 괴물의 모습으도서가 아니라, **사람의 간절한 마음과 인연을 이어주는 ‘영물’**로서 물고기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강릉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물고기 귀신’의 전설은 바로 그런 이야기다. 오랜 옛날, 명주(현 강릉)에 살던 한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선비가 마음을 두었고, 그녀 또한 그 정성을 알고 있었지만 허락 없이는 뜻을 따를 수 없다는 굳은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선비는 결국 서울로 돌아가 과거에 급제하지만, 그 사이 아가씨의 부모는 다른 신랑감을 구해 그녀를 시집보내려 한다. 마음이 불안했던 아가씨는 자신이 직접 키워 정을 나누어 온 연못 속 물고기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자신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던져 넣는다. 그러자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편지를 삼키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놀랍게도, 그 물고기는 서울의 시장에 팔려가 선비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선비가 물고기를 손질하던 중, 그 배 속에서 발견된 편지로 아가씨의 마음을 다시 알게 되었고, 곧장 명주로 달려간다.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정해진 혼례 일행이 막 도착하던 순간이었고, 선비는 편지를 증거로 내보이며 사실을 알렸다. 가족들은 처음엔 놀랐지만, 아가씨의 진심을 확인한 뒤 선비와의 인연을 받아들였고, 결국 두 사람은 극적으로 혼인을 맺게 된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라, 정성은 결국 통한다는 민속적 믿음, 그리고 사람이 아닌 존재도 진심을 알아보는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물고기는 이 이야기 속에서 단순한 동물이 아닌, 사람의 감정을 알아채고, 전하며, 인연을 이어주는 이인조가 존재로 기능한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했고, 정성 어린 마음이 초자연적인 힘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설이다. 물속의 귀신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사람다운 마음’을 가진 이인으로서의 물고기, 그것이 바로 이 이야기가 오늘날까지도 감동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신화 너머에 남겨진 것들 –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인’의 이야기

     

    전통 속 요괴와 이인(異人)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신비롭고 매혹적이다. 그러나 그 신비로움은 단지 괴이하거나 낯선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경계, 그 모호한 지점에 대한 조용한 사유에서 비롯된다. 강철이의 재앙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분노를 상징했고, 그루의 귀환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우연과 운명의 손길을 믿던 시대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농정과 충정은 수백 년을 살아낸 짐승의 몸을 통해, 도를 닦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고, 물고기 귀신은 정성과 인연이 만들어낸 기적의 전달자였다.

    이들은 단순한 전설 속 존재가 아니라, 시대마다 다르게 변용되어 인간의 이야기 속에 살아온 상징이자 대화의 형상들이다. 그리고 그 형상은 곧, 우리가 감추고 있던 감정과 소망, 두려움과 희망을 되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요괴를 실제로 믿지는 않지만,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주저하고, 알 수 없는 운명 앞에 의미를 찾으려 한다. 어쩌면 그 순간, 우리의 내면 어딘가에서는 또 하나의 이인이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다가와 "너는 지금도 길 위에 있다"고 속삭이듯이 말이다.

    이야기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할 뿐이다.
    오늘 우리가 다시 꺼내어 읽는 이 오래된 전설들은, 과거의 믿음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이인이라는 존재는 결국, 삶의 경계에서 나타나 우리를 이끌고, 묻고, 가끔은 조용히 동행해 주는 상징이다.
    그리고 그 상징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감사합니다.

     

    한국민속학
    hong-ad블로그

     

Designed by Tistory.